한 달이 늦어도 늦은 게 아닙니다
폐업을 결정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다음 자리를 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수입이 끊기는 게 무서웠습니다. 가족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다음 일을 시작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폐업 절차를 시작한 거의 같은 주에 봉직의 자리를 잡았고, 폐업일과 출근일 사이를 며칠밖에 비우지 않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게 그 시기의 가장 큰 실수였습니다.
폐업은 결정의 순간이 끝이 아닙니다
폐업을 결정하면 마음의 짐이 내려올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행정의 짐이 시작됐습니다.
보건소 폐업 신고, 14일 전 게시, 의료기기 처리, 의약품 정리, 의료폐기물 수거, 4대 보험 상실 신고, 세무서 폐업 신고, 부가세 확정신고, 카드 단말기 해지, 임대인과의 정산, 직원 정산, 그리고 환자들의 진료기록을 어떻게 보관할 것인가까지.
각 절차마다 서류가 필요하고, 어딘가에 직접 가야 하고, 누군가와 통화해야 합니다. 며칠이면 끝날 줄 알았던 일이 몇 주가 걸립니다. 어느 하나라도 빠뜨리면 나중에 다시 돌아와 마무리해야 합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을 봉직의 출근과 병행해서 했습니다. 낮에는 다른 병원에서 환자를 봤고, 진료 사이 짧은 틈에 전화를 돌렸고, 휴일에는 행정 업무를 처리했습니다. 점심 시간에 보건소에 가본 적도 있습니다.
적응에도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봉직의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새 환경이었습니다.
새 병원의 진료 시스템에 익숙해져야 했고, 새 직원들의 이름과 일하는 방식을 알아야 했고, 그 병원의 진료 철학과 환자 응대 방식에 맞춰가야 했습니다. 같은 치과 진료라도 병원마다 흐름이 다릅니다.
평소라면 이 적응 자체로 한 달은 정신없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한 달 동안 동시에 폐업 정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전 진료를 마치고 점심을 거의 못 먹은 채로 어딘가에 전화를 돌렸고, 저녁 진료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책상 위에 처리해야 할 서류가 쌓여 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새 환경에 집중하지도 못했고, 폐업 정리도 깔끔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양쪽 다 어정쩡한 상태로 흘러갔습니다.
그때 가장 무거웠던 것은 정신적 소모였습니다
행정 처리 자체가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서류 작성과 전화 응대와 방문은 그저 시간을 쓰는 일입니다.
진짜 무거운 것은 그 모든 것이 폐업이라는 일에 대한 정신적 처리와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이었습니다. 보건소에 폐업 신고서를 제출하는 순간, 의료기기를 폐기물 처리업체에 넘기는 순간, 마지막 직원에게 정산 서류를 건네는 순간. 그 하나하나가 마음의 무게를 동반합니다.
그 무게를 처리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다음 환자를 받아야 했으니까요. 새 병원의 원장님과 점심을 같이 먹어야 했으니까요. 다른 봉직의들과 어울려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그 무게는 처리되지 못한 채 어딘가에 쌓였습니다.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도 정신이 맑지 않았습니다. 진료 중에 가끔 멍해졌습니다. 그 상태가 몇 달 이어졌습니다.
한 달 늦는다고 달라지지 않습니다
폐업한 치과의사가 다음 일을 시작하는 것은 단기 아르바이트가 아닙니다. 봉직이든 다시 개원이든, 그 다음의 길은 길게 갑니다. 5년, 10년, 그 이상.
그 긴 시간 앞에서 한 달은 사실 아무것도 아닙니다. 5년의 1.6%, 10년의 0.8%입니다. 그런데 그 한 달을 못 비우고 출발한 사람과, 그 한 달을 비우고 출발한 사람은 그 다음 1~2년이 완전히 다릅니다.
비우지 못한 사람은 정신적 부채를 안고 출발합니다. 어딘가 정리되지 않은 마음, 처리되지 않은 감정, 적응되지 않은 환경. 그것들이 매일 조금씩 발목을 잡습니다. 진료 중에도 가끔 멍해지고, 환자에게 집중하기 어려워지고, 새 동료들과 진짜로 어울리지 못합니다. 그 상태로 일하면 본인도 힘들고, 환자도 알아챕니다.
비운 사람은 다릅니다. 폐업이라는 일을 마음에서 정리할 시간을 가졌고, 새 환경에 들어갈 준비를 했고, 무엇보다 본인이 어디로 가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할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시작하는 1~2년은 다른 1~2년이 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 한 달을 못 비울까요
수입의 공백이 무섭습니다. 그 한 달 동안의 생활비, 그 다음 달의 카드값, 가족의 시선.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그건 진짜 이유가 아닐 때가 많습니다. 진짜 이유는 빈 시간이 무서운 것입니다. 일이 없는 채로 한 달을 보내는 것, 평일 오후에 집에 있는 것,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나"라는 질문이 다가오는 것. 그게 더 무섭습니다.
일은 그 질문을 막아주는 가장 좋은 방패입니다. 그래서 폐업한 사람일수록 더 빨리 다음 일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빈 시간에 마주해야 할 것들이 너무 무겁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무거운 것들을 마주하지 않은 채로 다음으로 넘어가면, 그것들은 어디로도 가지 않고 본인 안에 쌓여 있습니다. 마주하는 것보다 도망치는 것이 더 무겁다는 걸, 그때는 잘 모릅니다.
한 달의 쉼이라는 것
쉰다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폐업 행정은 어차피 처리해야 합니다. 그 한 달은 그 처리에만 집중하라는 의미입니다.
오전에 보건소에 가고, 오후에 세무서에 가고, 저녁에 가족과 식사하는 그런 한 달. 폐업의 마지막 절차들을 하나씩 닫아가면서, 동시에 그 일이 본인에게 무엇이었는지를 천천히 정리하는 한 달.
그러는 사이 몸이 회복됩니다. 잠이 다시 오기 시작합니다. 평일 오후의 빈 시간에 익숙해지면서, 그 시간이 사실 무서운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면, 그 다음 일을 시작할 준비가 됩니다. 단지 출근할 준비가 아니라, 본인의 다음 시간을 받아들일 준비입니다.
나중이 아니라 지금 알면 좋은 것
저는 이걸 직접 통과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누가 미리 말해줬다면 다르게 했을 것입니다.
지금 폐업을 결정하셨거나, 결정을 앞두고 계시다면 — 다음 일자리에 대한 압박을 잠시 내려놓으셔도 됩니다. 한 달이 늦어도 늦은 게 아닙니다. 길게 달려야 하는 길 앞에서, 한 달의 버퍼는 사치가 아니라 필요한 출발선입니다.
다음 자리는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본인이 한 달 늦게 가도, 그 자리가 사라지는 일은 좀처럼 없습니다. 만약 그 한 달을 못 기다려주는 자리라면, 그건 아마 본인에게 맞는 자리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쉬셔도 됩니다. 그 한 달은 도망이 아니라 준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