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을 앞두고 가장 두려웠던 것은, 모든 것을 잃는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병원도, 돈도, 명예도,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질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 '전부 잃는다'는 공포가, 사실 저를 가장 오래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폐업을 하고 시간이 지나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분명 많은 것을 잃었는데, 손을 펴 보니 생각보다 많은 것이 그 안에 남아 있었습니다.
먼저, 빚을 갚지 못해 매일같이 졸이던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폐업과 회생은 분명 아픈 결정이었지만, 동시에 그것은 끝없이 돌려막던 그 굴레를 멈추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다음 결제일을 어떻게 막을지 계산하며 잠 못 들던 밤들이, 어느 순간부터 줄어들었습니다. 잃은 것만 생각했지, 내려놓음으로써 얻는 가벼움이 있다는 것은 미처 몰랐습니다.
진료하는 능력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병원이라는 사업체는 사라졌지만, 환자의 입속을 들여다보고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 그 능력은 누구도 가져가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제 안에 있는 것이었으니까요. 봉직의로 다시 진료를 보면서, 저는 그 사실에 새삼 감사했습니다. 내가 가진 진짜 자산은 병원 건물이나 장비가 아니라, 내 손과 머릿속에 있는 것이었구나, 하고요.
가족도 곁에 남아 있었습니다. 위기 중에는 제가 무너지면 가족도 저를 떠날 거라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무너지고 보니, 그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솔직해진 뒤에야, 함께 어려움을 마주하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제가 괜찮은 척 혼자 짊어지던 때보다, 무너진 뒤가 차라리 더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자신이 남아 있었습니다. 한때는 병원이 곧 저라고 생각했습니다. 병원이 잘되면 제가 잘난 사람이고, 병원이 무너지면 저도 무너진 사람이라고요. 그러나 병원을 잃고도 저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고, 진료를 하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씁니다. 병원은 제가 한동안 했던 일이지, 저라는 사람 그 자체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물론 잃은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그 상실은 분명히 아팠고, 지금도 완전히 아물지는 않았습니다. 폐업이 좋은 일이었다고, 다 잘된 일이었다고 미화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전부 잃는다'는 그 공포가 실제보다 훨씬 부풀려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늘 잃을 것만 키워서 보여주고, 남을 것은 가려서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폐업을 앞두고 모든 것을 잃을까 두려워 떨고 계신 원장님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잃는 것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당신의 능력, 당신을 아끼는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 자신은, 그 자리에 남습니다. 병원이라는 한 챕터가 끝나는 것이지, 당신이라는 책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다 잃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펴 본 손 안에, 다시 시작할 수 있을 만큼의 것이 남아 있었습니다. 당신의 손에도, 분명 그러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