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늦게 말하는가
병원에 위기가 시작되면 의사들은 보통 두 가지를 합니다.
첫째, 더 일합니다. 진료 시간을 늘리고, 토요일도 받고, 직원을 줄이고, 본인이 더 뜁니다. 둘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습니다. 특히 가족에게는요.
이상한 일입니다.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사람들에게 가장 마지막에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부끄러움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의사라는 직업이 그렇습니다. 사회적 기대치가 높고, 본인의 자기 기대치는 그보다 더 높습니다. "내가 운영하는 병원이 어렵다"는 말이 입 밖에 나오는 순간, 본인이 무너지는 느낌이 듭니다.
배우자에게 말하면 배우자가 실망할 것 같습니다. 부모에게 말하면 부모가 걱정할 것 같습니다. 형제에게 말하면 형제가 안쓰럽게 볼 것 같습니다. 자식에게는 절대 말할 수 없습니다.
이게 부끄러움인지, 자존심인지, 아니면 그냥 두려움인지는 본인도 정확히 모릅니다. 어쨌든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보호하려는 마음
가족을 보호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내가 짊어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가족까지 걱정시킬 필요는 없다고요.
이 생각은 나쁘지 않습니다.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의 자연스러운 마음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짚어보면 이상합니다. 정말 가족을 보호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본인이 보호받지 않는 사람이라는 자리에 머물고 싶은 것인지요. 책임지는 자리, 강한 자리, 모르는 척 견디는 자리. 그 자리에서 내려오는 게 두려운 것은 아닌지요.
가족을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정작 가족은 그 보호를 부탁한 적이 없습니다.
"조금만 더 버티면"의 환상
말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사실 이것입니다. 곧 좋아질 것 같다는 느낌.
이번 달은 어려웠지만 다음 달은 다를 것 같습니다. 이번 분기는 매출이 줄었지만 다음 분기에는 회복될 것 같습니다. 신환이 줄었지만 다시 늘어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생각합니다. "지금 말하면 괜한 걱정만 시킨다. 조금 더 가보고, 정말 안 되겠다 싶으면 그때 말하자."
문제는 그 "조금 더"가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번 달은 다음 달이 되고, 다음 분기는 그다음 분기가 됩니다. 그러는 사이 부채는 늘고, 카드는 한도에 가까워지고, 통장은 비어 갑니다. 그리고 어느 날,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순간이 옵니다.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조금만 더 버티면"이라는 생각이 가족에게 말할 입을 막습니다.
말하는 순간 진짜가 된다는 두려움
말하지 않으면 어쩐지 아직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본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매출, 부채, 임대료, 직원 월급, 다음 달 카드 결제일. 숫자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본인이 가장 잘 압니다.
그런데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한, 그건 본인 머릿속의 일입니다. 머릿속에서는 아직 어찌어찌 다룰 수 있을 것 같은 일입니다.
배우자에게 "여보, 사실 병원이 이 정도로 어려워"라고 말하는 순간, 그 일은 본인 머리 밖으로 나와 두 사람 사이의 현실이 됩니다. 둘 사이의 식탁에, 침대 옆에, 거실 한복판에 놓입니다. 더 이상 본인 혼자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의 문제가 됩니다.
그것이 두렵습니다. 말하는 순간 진짜가 되는 것이요.
그러나 가족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람들이 자주 잊는 사실이 있습니다.
같이 사는 사람은 압니다. 정확히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고 있는지는 모를 수 있어도,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은 압니다.
본인의 표정이 달라졌고, 잠들기 전 한숨이 늘었고, 휴대폰을 보는 시간이 길어졌고, 말수가 줄었습니다. 어떤 날은 평소보다 늦게 들어오고, 어떤 날은 일찍 들어와도 거실에 멍하니 앉아 있습니다.
배우자는 묻지 않을 뿐, 모르지 않습니다. 어쩌면 배우자는 본인이 말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본인이 말을 꺼내야 자기도 무언가 할 수 있다고 느끼면서요.
본인이 침묵하는 동안, 가족은 다른 종류의 무게를 안고 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 모른 채로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아는 무게. 어쩌면 그게 더 무거울 수도 있습니다.
말하지 않음의 비용
침묵에는 비용이 있습니다.
가족이 알았다면 함께 결정할 수 있었을 것들이, 혼자만의 결정이 됩니다. 가족이 알았다면 함께 줄일 수 있었을 것들이, 혼자만의 부담이 됩니다. 가족이 알았다면 함께 도와줄 사람을 찾을 수 있었을 것들이, 혼자만의 외로움이 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모든 것이 너무 멀리 와버린 다음에야 말하게 되면, 가족이 들었을 때의 충격이 더 큽니다. "왜 그동안 말하지 않았어?" "왜 혼자 짊어졌어?" "왜 나를 그렇게 못 믿었어?"
그 질문들이 가장 아픕니다. 가족을 보호하려고 침묵했는데, 결국 그 침묵이 가장 큰 상처가 됩니다.
말하는 순간에 대해
말하기 좋은 순간 같은 건 없습니다.
준비된 적당한 표현도 없고, 적당한 분위기도 없고, 적당한 시점도 없습니다. 모든 순간이 어색하고, 모든 표현이 부족하고, 모든 시점이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은 것 같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혼자서 다 해결한 다음에 말하려고 하면, 그 순간은 영영 오지 않습니다. 해결되지 않은 채로, 부족한 표현으로,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말하게 됩니다. 그게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말한다는 것은 짐을 가족에게 떠넘기는 일이 아닙니다. 본인이 짊어진 것의 무게를 가족에게 보여주는 일입니다. 그 무게를 본 가족이 무엇을 어떻게 할지는 그 다음의 이야기입니다.
본인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본인의 침묵을 끝내는 것뿐입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늦게 말하는 습관은, 우리가 가진 가장 외로운 습관 중 하나입니다.
오늘이 그 습관을 끊는 날이 되어도 괜찮습니다. 늦은 시점은 없습니다. 늦어도 말하지 않는 것보다는 늦게라도 말하는 것이 낫습니다.